티스토리 뷰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가을이 하늘을 뒤덮은 날

키가 큰 초등학교 6학년 김병수가 글쓰기를 배우러 우리 교실에 새로 왔습니다. 병수는 몸짓은 키가 커서 서있거나 걸어갈 때는 휘청거렸습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알아듣기 어려웠습니다. 항상 반쯤 웃는 표정이어서 처음 보자마자 좀 부족한 인상입니다.

 

몇 주가 지나 얼굴이 익숙해졌을 때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병수에게 말을 붙이려 얼굴을 보니 눈에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눈물이 가득 고였으며 우는 모습은 더욱 슬퍼 보였습니다. 친구가 때렸다고 했습니다. 때린 아이는 같은 6학년 아인데 키와 덩치가 병수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과연 이 애가 병수를 때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이게 물어보니 큰 소리로 겁을 주고 살짝 건드렸다고만 했습니다. 그 아이의 말을 계속 들어보니 사실이었습니다. 병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나는 병수를 강하게 글쓰기 공부보다는 태권도를 훈련시키기로 했습니다. 병수와 시간이 맞을 때는 태권도의 앞차기와 옆차기와 주먹으로 치는 동작을 가르쳤습니다. 동작은 절도가 없고 엉거주춤해서 우스웠지만 나는 병수를 가르치려고 애썼습니다. 누구를 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절도를 알게 해 주려고 했습니다. 나는 논산 훈련소와 대구 공병대에서 배운 실력과 고등학교 때 합기도 1단의 실력을 혼합하여 가르쳤습니다. 나의 태권도 실력이 부족했던지 병주의 앞차기는 진전되지 않고 1주일 만에 임시 태권도 사범을 그만두었습니다.  

 

그 애의 어머니께서는 집 근처 어느 아파트에서 청소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두 번 정도 뵈었는데 체격이 좋으셨습니다. 병주 목표는 국어 선생님라고 하셨습니다.

 

병수가 중학생이 된지도 1년이 지나 2학년이 되었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우리는 도봉산으로 놀러 갔습니다. 두 시간 동안 다녀오려니 바쁘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첫눈이 올 때처럼 환호를 질렀습니다. 중간고사 시험이 아무리 중요해도 봄에는 도봉산에 핀 진달래꽃과 개나리와 산벚꽃을 보러 갑니다. 봄에 새로 돋은 연둣빛 이파리를 보고 가을에는 천주교 공원묘지의 갈대와 푸석한 황토 흙을 느끼러 갑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계절의 변화에 따른 멋들을 시각과 촉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신방학 중학교를 지나 길을 건너면 곧 도봉산 입구로 들어섭니다.  근처 텃밭에는 동화작가 이상권 선생님이 배추밭을 일구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바람이 아직 차갑습니다. 진달래 가지에서 잎이 나기 전 꽃들이 정말 많았다. 나는 돌아갈 시간을 계산하고 아이들을 풀어놓았습니다. 병수는 꽃 구경보다는 장난치는 게 더 재미있었고 수업 빼먹고 노는 게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수의 키는 이제 내 키와 비슷해졌습니다.

 

나는 그때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정현종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란 시가 생각나서 몇 줄을 외워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하고 농담 주고받으며 옆에 있던 병수가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근사하게 외웠습니다. 깜짝 놀랐죠. 병수가 국어선생님이 꿈이라는 게 사실인 듯했습니다. 20행이나 되는 시를 정확하게 암송했던 병수가 멋있게 보였습니다. 병수는 키 작은 아이에게 상처받아 울고 있었지만, 속으로 아름다운 시를 간직하며 이렇게 좋은 봄날 내 앞에서 멋지게 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도 꽃봉오리 같은 순간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고, 주말농장 텃밭에서 일하시는 작가 선생님도, 옆 고랑의 할아버지도, 아주머니도,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꽃봉오리 병수입니다. 나는 병수에게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하는 것은 아무래도 소홀했던 것 같아 얼굴이 찡그려집니다.

 

토요일 오후에 나는 병주와 일심 해장국집에 갔습니다. 간단한 뷔페 형식의 식당입니다. 나는 음식을 일부러 많이 가져왔고 병수가 따라서 하도록 시켰습니다다. 병수가 음식을 조금 가져온 것을 보고 나의 음식 반을 병수에게 덜어 주었습니다. 병수가 더 잘 크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 후 정말 바쁘게 시간이 지났습니다. 병주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나의 글쓰기 교실을 떠났습니다. 나의 모든 생활은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칠까 하는 방법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주차장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학원 앞에 다 왔습니다. 나의 앞에는 어디서 본듯한 아주머니가 청소 도구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누굴까? 어디서 봤을까? . . . . . . 머릿속에서는 아직 누구인지를 찾아 내지 못하는 사이 아주머니는 바로 앞까지 다가왔습니다. 어디서 본듯한 얼굴이면 엇갈려 가다가 잠시 멈칫했습니다. ~ 병주 어머니셨습니다. 잠시 망설이다가 큰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병수 어머니도 나를 생각해 내셨습니다. 바로 이 아파트에서 청소를 하고 계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병수의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병수는 키가 186cm로 크지만 삐쩍 말라서 휘청거린다고, 조금만 더 자라면 190cm는 넘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하셨고, 나는 가까운데 사니 병주에게 놀러 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 후로 아직 병수를 만나지 못 했습니다.

 

나는 지금도 가끔 병수의 어눌한 말투가 들리는 듯합니다. 병수와의 추억을 생각하니 도봉산에서 멋들어지게 시를 외우는 병수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 순수한 꽃봉오리가 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훗날 마음이 순수한 병수는 훌륭한 국어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도봉산 꽃봉오리를 구경시켜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