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김현태는 생각 펼치기 교실에서 글쓰기를 배우는 숭미 초등학교 4학년 학생입니다. 1년 전 어느 날 김현태가 어머니와 함께 우리 교실에 찾아왔습니다. 현태는 외동아들이고 자신감이 떨어져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가끔 나의 눈치를 보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태는 글쓰기를 테스트를 한다는 말에 더욱 불안해했습니다. 테스트를 겨우 마쳤습니다. 테스트를 끝냈다고 하기보다는 테스트를 포기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겁니다. 테스트를 채점할 내용이 거의 없었습니다. 글을 써 놓은 문제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이 아이를 배우게 해야겠다는 현태 어머니의 강한 모성에 의하여 단 한 명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림과 사진과 영화를 보조 자료로 하여 글쓰기의 방법을 배우고 그런 보조 자료를 활용하여 실제 글쓰기를 연습했습니다. 그러나 현태는 간단하게 질문을 하여도 대답을 못했습니다. 저는 첫 시간 강의를 끝내고 나니 몹시 지쳤습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답답했던 것이죠. 현태는 간단한 언어 전달을 받아 주지 못했고, 쉽게 여러 번 설명을 해 줘도 눈을 아래로 또는 옆으로 돌리고 대답은 안 했습니다. 글씨라는 몇 자를 써 봤는데 글씨가 엉망이어서 읽기가 곤란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현태에게 중요한 것은 글쓰기 공부가 아니라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상태에서 글쓰기 공부를 시키다 보면 아이가 부담감만 갖게 된다. 자신감을 먼저 회복한 후에 글쓰기 공부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때 현태를 가르치기 싫었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핑계삼아 자신감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로써 그럴듯하게 포장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는 현태 어머니께 현태에게 중요한 것은 글쓰기 공부보다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 드리면서 우선 태권도나 검도를 시킬 것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천둥치는 밤'같은 짧지만 생각할 수 있는 그림책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책은 얼마든지 소개해 드리겠다고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즉, 현태는 우리 교실에서 글쓰기 공부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현태 공부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1시간 반이 지났습니다. 그 현태 어머니께서는 매우 아쉬워하셨습니다. 어떻게 공부해 볼 수 없겠냐고 같은 말씀을 여러 번 하셨지만 아쉽게도 저는 거절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현태가 그날로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었었으니까요.

어머니와 현대가 교실을 빠져나가자 나는 밖 공기를 쐬러 1층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마트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 옆 길에 모서리에 현태가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짧게 아는 척을 하고 교실에서 가까운 앞산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봄기운이 화사하고 공기가 시원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현태가 무언가 들고 뛰어왔습니다.

 “저기 이거 엄마가 드리래요?”

 

  현태 어머니께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저에게 감사의 표시로 제과점 빵을 전해 주신 겁니다. 저는 현태에게 고맙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날로 그 일이 그 애와 마지막인 줄 알았습니다. 다음날 현태를 소개해 준 선생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내용은 현태가 처음에는 낯설어서 공부를 잘 못하는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잘 할수 밖에 없는 아이라는 점을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글쓰기를 꼭 가르쳐 달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현태를 가르칠 것을 마음먹었습니다. 이렇게 결정되니 벌써 현태를 위한 프로그램이 머릿속에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현태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태는 글과 그림에서 떨어지는 아이입니다. 현태는 순진한 아입니다. 제가 시키는 숙제는 꼭 지켜야 하는 법으로 알고 끝까지 해 오는 성실한 아이였습니다. 내가 아이에게 칭찬을 해 줄 때면 아이는 자신이 칭찬을 받는다는 사실을 못 믿겠는지 입 틈만 약간 벌어져지고 웃는 것 같으나 크게 웃지는 않았습니다. 꾸중을 들을 때는 눈을 아래를 보고 있었는데 눈물도 보였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과 앞산으로 놀러 가는 길에는 발걸음 빨랐고 산에 들어서면 걷지 않고 뛰어다녔습니다. 얼굴 생김새가 영락없는 산골 아이여서 풋풋한 산과 잘 어울렸습니다. 삼복더위가 맹렬할 때는 현태 어머니가 아이들과 선생의 숫자만큼 아이스크림을 보내 주셨고 날이 선선할 때는 떡볶이와 순대를 넣어 주셨습니다. 쉬는 시간에 먹으면 좋겠지만 다음 시간에 지장이 많아서 저는 학원에서 음식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인정 없는 말일지 몰라도 음식을 금지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 보내 주신 간식들은 수업이 끝난 뒤에 먹거나 아이들이 집에 갈 때 나누어 주거나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수업 시간에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신 찐 감자,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과일은 허락했습니다. 그것도 쉬는 시간 10분 내에 먹을 수 있는 조금씩만 허락했습니다.

 

현태에게 글쓰기를 가르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현태의 글쓰기 실력은 초당초등학교 수재라고 할만한 장하영이를 능가했습니다. 불규칙 도형을 완성하는 그림 식력도 약간씩 정밀하고 결합이 다양해졌습니다소설의 뒷부분을 이어 쓰는 훈련이라든지 시를 돌려쓰는 생각 고리라든지의 속도는 같은 반 아이들 중에 가장 빨랐습니다. 정해진 짧은 시간 내에 글자 많이 쓰기 경쟁도 했습니다. 글자 수를 정해 경쟁하게 되니 집중하여 쓰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현태는 느리게 적응하였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빨리 안착해 갔습니다. 현태 어머니는 현태가 글쓰기 공부가 재미있고 글쓰기가 쉬워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5학년 가을쯤 현태 어머니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현태네 가족이 일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아쉬운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저 역시 현태를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습니다.

 

는 현태가 처음 온 날이 생각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앞산의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때, 현태나 그 어머니께서는 그 바람결은 후텁지근한 답답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현태와 마지막 시간입니다. 현태가 잘하는 분야를 골라 글쓰기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소설의 한 부분을 골라 뒷부분을 마음대로 이어 쓰는 글쓰기를 선택하여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현태는 역시 모든 아이들 중에서 가장 잘 쓰고 있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빨간 모자 쓴 한 청년이 빨간 비닐 커버를 덥은 상자를 안고 들어왔습니다. 현태 어머니께서 1층 치킨집에서 아이들이 먹을 치킨을 배달시키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쉬는 시간 10분 안에 먹기는 글렀다고 생각하여 공부를 그만두고 마음 놓고 아이들에게 치킨을 먹였습니다.

 

교실에서 음식을 먹는 철칙이 또 깨졌습니다. 이번에는 깨진 규칙을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교실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랐고 아이들은 매일매일 깨지기를 바랐습니다. 이래저래 현태는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음식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현태는 일산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선생이라는 직업을, 선생의 오만을. 현태를 보면서 막연하게 믿고 있었던 교육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졌습니다. 누구든지 성실하게 노력한다면 누구든지 잘 할 수 있다고 믿어졌습니다. 배우러 오겠다는 학생의 실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하여 선생으로서 가르치기를 거부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사실에서 저의 오만을 깨달은 것은 일산으로 간 현태를 통해 알았습니다.

 

'학생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어와 잡학 박사 안민서를 추억하며  (0) 2015.11.24
키 큰 학생 김병수의 추억  (0) 2015.11.24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